Program Introduction

점과 선 시즌 2-4: 여름의 아침

아침의 날개 Wings of the Morning by Edward Robert Hughes
“아침을 알리는 종달새 노래가 들립니다” (4막 1장 – 퍽)

르클레르: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9-3

Jean-Marie Leclair(1697-1764):  Violin Sonata in D major, Op. 9 No. 3 (11 mins. / 1743 / dedicated to Princess Anne of Orange in the Netherlads)

I. Un poco andante
II. Allegro – Adagio
III. Sarabande. Largo
IV. Tambourin. Presto

르클레르의 아버지는 레이스 만드는 장인이자 훌륭한 첼리스트였다. 르클레르는 이 가족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였다. 바이올린 연주와 작곡으로 유명해지기 전, 어린 르클레르는 가업인 레이스 장인 훈련을 받았고 전문 무용수로도 활동했다. 형제 중 세 명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는데 장-마리 르클레르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 장-마리가 또 한 명 있는데 이름 앞에 ‘막내 le cadet’를 붙여 구별한다. 르클레르의 첫 아내는 무용수였고 두 번째 아내는 판화작가였다. 출판되었던 작품번호 2번에서 15번까지의 모든 작품을 두 번째 아내가 판각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 루이즈도 판화작가가 되었고 화가인 루이 퀴네와 결혼했다. 르클레르의 조카인 바이올리니스트 귀욤-프랑수아 비알이 그를 살해했다는 증거가 많았으나 기소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르클레르는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태두로 여겨진다. 하지만 활동하던 당대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스타일을 하나로 묶은 공로를 높이 평가 받았다. 그의 네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곡집인 작품번호 9번은 몇 년간 계절적으로 고용 관계를 유지했던 네덜란드 오라녜(오렌지) 왕가의 안나 왕녀에게 헌정됐다. 이 곡집의 세 번째 소나타는 르클레르의 민족적 스타일과 기교를 동시에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더블 스톱이 많은데 아름다운 선율과 경쾌한 리듬이 사용된 곡이다. 느림-빠름-느림-빠름의 전형적인 이탈리아 교회소나타 4악장 구조에 프랑스 춤곡인 사라방드와 탕부랭을 활용해 두 나라의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섬세한 악상 변화를 우아한 선율로 노래하고 경쾌한 리듬 속에 대비되는 동기들이 여름 아침의 상큼한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야나체크: 바이올린 소나타

Leoš Janáček(1854-1928): Violin Sonata, JW VII/7 (18 mins. / 1914-1922)

I. Con moto
II. Ballada
III. Allegretto
IV. Adagio

라이프치히 콘서버토리 학생 시절에 야나체크가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전하지는 않는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대한 첫 시도로부터 거의 35년이 흘렀을 때, 작곡가는 열정적으로 여러 실내악 작품을 썼다. 야나체크의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 작곡 시점은 1차 세계대전 와중이었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1914년) 복잡한 내 머릿속에서는 쇠가 갈리는 소리만 들려왔죠.” 이 곡은 짧은 동기들, 템포의 빠른 변화, 강렬한 감정 표현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전형적인 후기 야나체크 스타일의 정수가 담겨 있다. 첫 악장은 열정적이며 서정적이다. 강렬하게 상승하는 바이올린과 트레몰로를 동반한 긴장감 넘치는 피아노의 서정적 멜로디가 이어지고 고뇌에 찬 절정으로 치달은 후 도입부의 재현으로 나아간다. 두 번째 악장은 민요의 단순한 동기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바이올린의 선율을 피아노의 분산화음이 뒷받침한다. 3악장 알레그레토는 매우 독특한 2분 짜리 스케르초이다. 마지막 악장인 아다지오는 긴장된 클라이맥스를 품고 있지만 시작과 끝은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 서 있는 느낌이다.

1910년의 야나체크 Leos Janacek 1910s
해변의 여름밤 Summer night by the beach by Edvard Munch(1902-03)

드보르작: 네 개의 낭만적 소품

Antonín Leopold Dvořák(1841-1904): Four Romantic Pieces, Op. 75, B. 150 (16 mins. / 1887)

I. Allegro moderato (B flat major)
II. Allegro maestoso (D minor)
III. Allegro appassionato (B flat major)
IV. Larghetto (G minor)

40대 시절의 드보르작 Antonin Dvorak in his 40s

드보르작은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관점에서 역설적인 존재다. 30대 중반에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개인적 취향과 음악 미학은 어린 시절부터 지향했던 단순함의 아름다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그는 동시대 문화인들이 겪었던 불안, 노이로제, 격동의 감정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소박하고도 깊은 신앙심의 가톨릭 신자였기에 감정적 균형을 유지하며 즐거운 삶을 살았던 그는 헨델, 하이든, 멘델스존과 함께 가장 행복하고도 건강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유럽 음악계가 그의 작품을 열렬히 탐구했지만 문화 엘리트들 사이에서 드보르작은 전혀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대신 그를 행복하게 한 것은 가족과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 자연과의 교감, 철도와 기차에 대한 열정적 관심이었다.

한 사람이 위대한 재능과 진정한 겸손을 동시에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드보르작은 “하나님, 사랑, 조국”이라는 모토 아래 재능과 겸손을 조금의 모순 없이 구현해냈다. 드보르작에게 최고의 축복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1875년과 1877년 사이에 외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가슴 찢는 슬픔의 결과는 1877년 겨울의 <스타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로 나타났다. 절망적 충격이 찾아오긴 했어도 작곡가로서의 드보르작은 1870년 대의 십 년을 성공의 연속으로 보냈다. 당대 최고의 출판사인 짐록과 계약했고 유럽 전역에서 평단의 찬사가 이어졌다. 동시대를 살았던 브람스, 슈만,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지만 현악 작품에서 발현된 독창적인 기법, 민족 정서에 바탕을 둔 아름다운 선율과 같은 드보르작만의 특성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로써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깊이와 놀라운 정교함이 어우러져 드보르작 내면의 감정 세계는 일반인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직조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낭만적 소품’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비올라를 위한 바가텔, Op. 75a의 개작이다. 드보르작은 자기 집에 하숙하던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Op. 74의 ‘테르제토’를 써줬는데 이 곡이 연주하기 너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자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다시 쓴 것이 Op. 75a의 ‘바가텔’이었다. ‘네 개의 낭만적 소품’에는 이처럼 자애로운 작곡가의 마음이 이어진 결과다. 단순하면서 매력적이고, 2악장에 흐르는 보헤미안의 정서를 필두로 모든 악장에서 풍겨나는 서정적 향기가 아름답다.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6번

Eugène-Auguste Ysaÿe(1858-1931): Violin Sonata No.6 in E major, Op. 27-6 (7 mins. / 1923 / dedicated to Manuel Quiroga)

I. Allegro giusto non troppo vivo

이자이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에 영감을 받아 여섯 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 그 중 마지막 곡인 이 6번은 가장 덜 바흐스러운 작품이다. 하바네라 풍으로 쓰여졌으며 폭풍처럼 몰아치는 중간부, 극단적으로 음계를 오르내리는 스케일과 풍부한 질감으로 뇌리에 깊이 박히는 곡이다.

벨기에 리에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자이는 리에주 콘서버토리에서 로돌페 마싸르에게 배웠는데 최우등상을 받은 그를 두고 마싸르는 “이자이는 마치 새가 노래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주한다.”란 평을 남겼다. 이자이가 음악적으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비외탕과 비에니야프스키였다. 30대 중반 나이로 독주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는 와중에 이자이는 자신의 현악사중주단을 만들고 자기 이름을 건 콩쿠르까지 열었다. 브뤼셀 콘서버토리 교수를 역임한 후,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미국에서 신시내티 심포니를 지휘하기도 했다. 브뤼셀 콘서버토리에서는 학장의 자리에 올라 많은 후학을 가르쳤다.

이자이 소나타 6번을 헌정받은 마누엘 퀴로가 Manuel Quiroga

연주자, 교육자로서의 이자이는 널리 알려졌지만 작곡가로서의 그는 최근까지도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란 인식 때문에 (극도로 연주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만이 종종 소개되는데 그가 남긴 작품 중 출판된 것으로는 한 개의 오페라, 17개의 협주곡, 다수의 실내악곡, 다수의 바이올린 편곡과 카덴짜 등이 있고 출판되지 않은 작품에도 전주곡, 왈츠, 마주르카, 7개의 협주곡 등 여러 곡이 있다. 이자이 음악은 이제 막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written by Pete Song

(주)피트뮤직 petemusic.org

Program Introduction

점과 선 시즌 2-4: 여름의 아침

아침의 날개 Wings of the Morning by Edward Robert Hughes
“아침을 알리는 종달새 노래가 들립니다” (4막 1장 – 퍽)

르클레르: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9-3

Jean-Marie Leclair(1697-1764):  Violin Sonata in D major, Op. 9 No. 3 (11 mins. / 1743 / dedicated to Princess Anne of Orange in the Netherlands)

I. Un poco andante
II. Allegro – Adagio
III. Sarabande. Largo
IV. Tambourin. Presto

르클레르 Jean-Marie Leclair 1697-1764

르클레르의 아버지는 레이스 만드는 장인이자 훌륭한 첼리스트였다. 르클레르는 이 가족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였다. 바이올린 연주와 작곡으로 유명해지기 전, 어린 르클레르는 가업인 레이스 장인 훈련을 받았고 전문 무용수로도 활동했다. 형제 중 세 명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는데 장-마리 르클레르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 장-마리가 또 한 명 있는데 이름 앞에 ‘막내 le cadet’를 붙여 구별한다. 르클레르의 첫 아내는 무용수였고 두 번째 아내는 판화작가였다. 출판되었던 작품번호 2번에서 15번까지의 모든 작품을 두 번째 아내가 판각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 루이즈도 판화작가가 되었고 화가인 루이 퀴네와 결혼했다. 르클레르의 조카인 바이올리니스트 귀욤-프랑수아 비알이 그를 살해했다는 증거가 많았으나 기소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르클레르 소나타를 헌정받은 안나 왕녀 Anna von Hannover prinses van oranje

르클레르는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태두로 여겨진다. 하지만 활동하던 당대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스타일을 하나로 묶은 공로를 높이 평가 받았다. 그의 네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곡집인 작품번호 9번은 몇 년간 계절적으로 고용 관계를 유지했던 네덜란드 오라녜(오렌지) 왕가의 안나 왕녀에게 헌정됐다. 이 곡집의 세 번째 소나타는 르클레르의 민족적 스타일과 기교를 동시에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더블 스톱이 많은데 아름다운 선율과 경쾌한 리듬이 사용된 곡이다. 느림-빠름-느림-빠름의 전형적인 이탈리아 교회소나타 4악장 구조에 프랑스 춤곡인 사라방드와 탕부랭을 활용해 두 나라의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섬세한 악상 변화를 우아한 선율로 노래하고 경쾌한 리듬 속에 대비되는 동기들이 여름 아침의 상큼한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야나체크: 바이올린 소나타

Leoš Janáček(1854-1928): Violin Sonata, JW VII/7 (18 mins. / 1914-1922)

I. Con moto
II. Ballada
III. Allegretto
IV. Adagio

1910년의 야나체크 Leos Janacek 1910s

라이프치히 콘서버토리 학생 시절에 야나체크가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전하지는 않는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대한 첫 시도로부터 거의 35년이 흘렀을 때, 작곡가는 열정적으로 여러 실내악 작품을 썼다. 야나체크의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 작곡 시점은 1차 세계대전 와중이었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1914년) 복잡한 내 머릿속에서는 쇠가 갈리는 소리만 들려왔죠.” 이 곡은 짧은 동기들, 템포의 빠른 변화, 강렬한 감정 표현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전형적인 후기 야나체크 스타일의 정수가 담겨 있다. 첫 악장은 열정적이며 서정적이다. 강렬하게 상승하는 바이올린과 트레몰로를 동반한 긴장감 넘치는 피아노의 서정적 멜로디가 이어지고 고뇌에 찬 절정으로 치달은 후 도입부의 재현으로 나아간다. 두 번째 악장은 민요의 단순한 동기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바이올린의 선율을 피아노의 분산화음이 뒷받침한다. 3악장 알레그레토는 매우 독특한 2분 짜리 스케르초이다. 마지막 악장인 아다지오는 긴장된 클라이맥스를 품고 있지만 시작과 끝은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 서 있는 느낌이다.

해변의 여름밤 Summer night by the beach by Edvard Munch(1902-03)

드보르작: 네 개의 낭만적 소품

Antonín Leopold Dvořák(1841-1904): Four Romantic Pieces, Op. 75, B. 150 (16 mins. / 1887)

I. Allegro moderato (B flat major)
II. Allegro maestoso (D minor)
III. Allegro appassionato (B flat major)
IV. Larghetto (G minor)

드보르작은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관점에서 역설적인 존재다. 30대 중반에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개인적 취향과 음악 미학은 어린 시절부터 지향했던 단순함의 아름다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그는 동시대 문화인들이 겪었던 불안, 노이로제, 격동의 감정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소박하고도 깊은 신앙심의 가톨릭 신자였기에 감정적 균형을 유지하며 즐거운 삶을 살았던 그는 헨델, 하이든, 멘델스존과 함께 가장 행복하고도 건강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유럽 음악계가 그의 작품을 열렬히 탐구했지만 문화 엘리트들 사이에서 드보르작은 전혀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대신 그를 행복하게 한 것은 가족과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 자연과의 교감, 철도와 기차에 대한 열정적 관심이었다.

40대 시절의 드보르작 Antonin Dvorak in his 40s

한 사람이 위대한 재능과 진정한 겸손을 동시에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드보르작은 “하나님, 사랑, 조국”이라는 모토 아래 재능과 겸손을 조금의 모순 없이 구현해냈다. 드보르작에게 최고의 축복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1875년과 1877년 사이에 외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가슴 찢는 슬픔의 결과는 1877년 겨울의 <스타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로 나타났다. 절망적 충격이 찾아오긴 했어도 작곡가로서의 드보르작은 1870년 대의 십 년을 성공의 연속으로 보냈다. 당대 최고의 출판사인 짐록과 계약했고 유럽 전역에서 평단의 찬사가 이어졌다. 동시대를 살았던 브람스, 슈만,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지만 현악 작품에서 발현된 독창적인 기법, 민족 정서에 바탕을 둔 아름다운 선율과 같은 드보르작만의 특성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로써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깊이와 놀라운 정교함이 어우러져 드보르작 내면의 감정 세계는 일반인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직조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낭만적 소품’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비올라를 위한 바가텔, Op. 75a의 개작이다. 드보르작은 자기 집에 하숙하던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Op. 74의 ‘테르제토’를 써줬는데 이 곡이 연주하기 너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자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다시 쓴 것이 Op. 75a의 ‘바가텔’이었다. ‘네 개의 낭만적 소품’에는 이처럼 자애로운 작곡가의 마음이 이어진 결과다. 단순하면서 매력적이고, 2악장에 흐르는 보헤미안의 정서를 필두로 모든 악장에서 풍겨나는 서정적 향기가 아름답다.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6번

Eugène-Auguste Ysaÿe(1858-1931): Violin Sonata No.6 in E major, Op. 27-6 (7 mins. / 1923 / dedicated to Manuel Quiroga)

I. Allegro giusto non troppo vivo

이자이 소나타 6번을 헌정받은 마누엘 퀴로가 Manuel Quiroga

이자이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에 영감을 받아 여섯 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 그 중 마지막 곡인 이 6번은 가장 덜 바흐스러운 작품이다. 하바네라 풍으로 쓰여졌으며 폭풍처럼 몰아치는 중간부, 극단적으로 음계를 오르내리는 스케일과 풍부한 질감으로 뇌리에 깊이 박히는 곡이다.

벨기에 리에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자이는 리에주 콘서버토리에서 로돌페 마싸르에게 배웠는데 최우등상을 받은 그를 두고 마싸르는 “이자이는 마치 새가 노래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주한다.”란 평을 남겼다. 이자이가 음악적으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비외탕과 비에니야프스키였다. 30대 중반 나이로 독주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는 와중에 이자이는 자신의 현악사중주단을 만들고 자기 이름을 건 콩쿠르까지 열었다. 브뤼셀 콘서버토리 교수를 역임한 후,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미국에서 신시내티 심포니를 지휘하기도 했다. 브뤼셀 콘서버토리에서는 학장의 자리에 올라 많은 후학을 가르쳤다.

연주자, 교육자로서의 이자이는 널리 알려졌지만 작곡가로서의 그는 최근까지도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란 인식 때문에 (극도로 연주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만이 종종 소개되는데 그가 남긴 작품 중 출판된 것으로는 한 개의 오페라, 17개의 협주곡, 다수의 실내악곡, 다수의 바이올린 편곡과 카덴짜 등이 있고 출판되지 않은 작품에도 전주곡, 왈츠, 마주르카, 7개의 협주곡 등 여러 곡이 있다. 이자이 음악은 이제 막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written by Pete Song

(주)피트뮤직 petemusi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