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gram Introduction

점과 선 시즌 2-8: 열정의 밤

4막 1장 오베론과 티타니아 그리고 춤 추는 요정 Oberon, Titania and Puck with Fairies Dancing by William Blake c1789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니까. 그래서 날개 달린 큐피드는 장님으로 그려지는가 봐” (1막 1장 – 헬레나)

차이코프스키: 소중한 장소의 추억(그리운 고향의 추억)

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 Souvenir d’un lieu cher, Op.42 (17 mins. / 1878 / dedicated to Nadezhda von Meck)

I. Méditation. Andante molto cantabile (D minor)
II. Scherzo. Presto giocoso (C minor)
III. Mélodie. Moderato con moto (E flat major)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 갑작스런 이별의 아픔이 차이코프스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내적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마음이 거친 음악으로 나올 법도 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린 속살의 진주 조개가 영롱한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작곡가는 고통의 마음으로 완벽한 화음과 애타는 선율의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던 감정을 음악으로 들을 때 듣는 이는 막힌 가슴이 뚫리는 위로를 얻게 된다. 감정이 말하도록 하는 특별한 능력이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있다. ‘명상’, ‘스케르초’, ‘멜로디’의 3악장으로 구성된 ‘소중한 장소의 추억’은 그 좋은 예다.

이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첫 악장은 협주곡의 느린 악장을 염두에 두고 썼다가 앞, 뒤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락됐던 곡이다. 협주곡의 2악장은 ‘칸초네타’로 교체됐는데 둘 다 “노래한다”(칸타빌레와 칸초네타)는 분위기로는 마찬가지다.

따로 쓴 ‘스케르초’와 ‘멜로디’를 ‘명상’과 묶어 ‘소중한 장소의 추억’이 만들어졌다. ‘소중한 장소’는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였던 나데츠다 폰 메크 부인의 영지인 브라일로프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곡가가 이곳을 방문한 기록이 없으니 곡은 온전히 본인의 상상과 상념에 바탕을 둔 결과물이다. 작곡 배경과 표제의 취지는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바이올린 음악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부인은 음악과 표제 모두에 아주 흡족해 했다고 한다.

작곡가 자신은 첫 악장을 제일 마음에 들어했는데 동시에 가장 어렵게 만든 곡이라고 회고했다. 매우 빠른 ‘스케르초’에 이어 나오는 ‘멜로디’에 대해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이 곡을 쓰려고 할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라일락이 아직 활짝 피어있고 온갖 풀이 높이 자라던 때였다. 내 우울증은 장미가 막 피기 시작하는 걸 볼 때까지 계속되었다.”

애초에 ‘무언가 Chant sans paroles’란 제목이 붙었던 ‘멜로디’는 푸른 풀과 붉은 장미의 생명력 덕분에 우울함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작곡가의 기쁨이 녹아있는 곡이라 하겠다. 글라주노프가 오케스트레이션한 관현악 버전도 유명하지만 추억의 노래를 듣는 맛으로 치자면 두 연주자가 나누는 대화가 더 감칠 맛 난다.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발라드"

Eugène-Auguste Ysaÿe(1858-1931):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Ballade“ Op. 27-3 (7 mins. / 1923 / dedicated to George Enescu)

1923년에 작곡된 단악장의 이 소나타는 작품번호 27의 여섯 개 소나타 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작곡가가 이 곡에 대해 남긴 말이 있다. “제 상상력이 맘껏 날아다니게 했습니다. 제오르제 에네스쿠에 대한 우정과 존경, 그리고 카르멘 실비아 왕비의 궁정에서 그와 함께 한 즐거운 연주를 떠올리면서 말이죠.” (카르멘 실비아는 독일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나 루마니아 왕과 결혼했고 재위 시절에 루마니아 금십자(적십자와 같은 기능)를 설립해 전쟁 부상자를 도왔다. 여성 교육에 앞장섰으며 그 외 많은 자선 단체를 설립했다. 음악, 미술, 문학의 여러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많은 창작시를 남겼고 루마니아 농민 사이에 전승되던 노랫말을 채집해 시로 정리하기도 했다.)

이 소나타는 2부로 구성되었다. 렌토 몰토 소스테누토 (최대한 억제하는 느낌으로 느리게)라 표시된 도입부로서의 1부는 오페라로 친다면 서창과도 같이 곧 주제가 나올 것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온음만 사용하는 음악이 급격한 도약과 추락의 선율로, 많은 불협화음과 반음계의 사용으로 진행하며 변화무쌍한 표정을 드러낸다. 1부는 알레그로 인 템포 지우스토 에 콘 브라부라(정확한 알레그로의 빠르기로 대담하게)라 표시된 이 곡의 2부로 바로 넘어간다. 3/8박자로 동요하는 듯한 부점, 더블 스톱과 트리플 스톱이 난무하는 음악이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빠른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원활하게 이어 연주하기) 셋잇단음표의 마디를 통과한 후에는 다시 부점 리듬의 주제로 되돌아간다. 32분 음표가 다닥다닥 붙어 극도로 빠르고 찬란한 느낌을 주는 코다로 끝이 난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에게 200개 넘는 곡이 헌정되었다. 드뷔시, 생상스, 쇼송, 프랑크와 같은 작곡가들도 이자이를 위한 작품을 썼다. 헌정은 헌정을 낳아 작곡가로서의 이자이는 이 소나타가 포함된 독주 바이올린 소나타집의 모든 곡을 같은 시대를 살던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헌정했다. 이 곡을 받은 루마니아 출신의 제오르제 에네스쿠는 이자이처럼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후에 예후디 메누힌을 가르친다.

한여름의 전야 - 에드워드 로버트 휴Midsummer Eve by Edward Robert Hughes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Johannes Brahms(1833-1897):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Op. 108 (22 mins. / 1886-88 / dedicated to Hans von Bülow)

I. Allegro
II. Adagio
III. Un poco presto e con sentiment
IV. Presto agitato

거대한 산과도 같은 베토벤 9번 교향곡 때문에 브람스가 D단조를 회피했다는 의혹이 있다. 하지만 이는 호사가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대규모 기악 작품은 아니라 해도 이 소나타 3번에서처럼 신중하고도 단호한 필치로 D단조 활용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 근거가 희박하다. ‘합창’ 교향곡의 긴장감과 극적 전개가 이 조성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같은 조의 이 곡에서도 긴박하며 힘찬 에너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위대한 교향곡과 협주곡들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작곡가의 고고한 지성과 빼어난 장인 정신이 아름답게 결합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은 첫 네 마디에 악장 전체가 응축되어 있다. 상승하는 네 번째 음, 하강하는 여덟 번째 음, 빠른 음표 뒤에 이어지는 긴 음,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피아노의 불안정한 반주선이 그것이다. 신비롭게 등장하는 이 동기가 옥타브를 오르내리고, 갑작스런 포르테로 영웅적 표정을 짓는데 듣는 이의 감정도 함께 울컥한다. D장조로 마감되며 2악장으로 이어진다. 피아노가 반주 역할에 집중하는 동안 바이올린이 부드럽고 서정적인 노래를 한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낭만적 선율은 3/8박자 느린 왈츠 리듬으로 바뀌어 이어지고 더블 스톱을 사용해 상승하는 클라이막스에 이르렀다 다시 악장 초입의 소박한 정서로 돌아와 조용하게 끝난다.

응축된 감정의 이 악장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전 악장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종의 스케르초인 3악장은 서정적인 2악장과 폭발적인 4악장 사이에 위치한다. 앞선 두 개의 소나타가 전형적인 3악장 구조인데 3번 소나타는 이 악장 덕분에 4악장 구조가 되었다. 어찌 보면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고, 다른 면에서는 사람들이 간과하던 곳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다. 변칙적인 리듬과 선율 때문에 일종의 스케르초라는 평을 듣는데 전혀 요란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평론가 한슬릭은 이 3악장을 가장 독창적인 브람스 작품이라 평하기도 했다. 1악장의 열정은 4악장에서 다시 나타난다. 피아노는 집약된 힘으로 음을 쏟아낸다. 두 악기는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맞붙는다. 극적 고조에 올랐다가 비극적인 분위기로 하강하는 코다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이 소나타는 고전에서 낭만으로의 전이 과정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겸비한 소나타로 추앙받고 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로 유명했던 한스 폰 뷜로에게 헌정됐다. 뷜로는 바그너의 제자이자 추종자였는데 부인이었던 코지마가 이혼 후 바그너에게 가버리자 바그너와 대척점에 있던 브람스와 친분을 쌓으며 음악적으로 지지하기에 이른다. 정통 독일 음악의 계보를 3B(바흐, 베토벤, 브람스)라 처음 일컬었던 이도 뷜로였다.

written by Pete Song

(주)피트뮤직 petemusic.org

Program Introduction

점과 선 시즌 2-8: 열정의 밤

4막 1장 오베론과 티타니아 그리고 춤 추는 요정 Oberon, Titania and Puck with Fairies Dancing by William Blake c1789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니까. 그래서 날개 달린 큐피드는 장님으로 그려지는가 봐” (1막 1장 – 헬레나)

차이코프스키: 소중한 장소의 추억(그리운 고향의 추억)

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 Souvenir d’un lieu cher, Op.42 (17 mins. / 1878 / dedicated to Nadezhda von Meck)

I. Méditation. Andante molto cantabile (D minor)
II. Scherzo. Presto giocoso (C minor)
III. Mélodie. Moderato con moto (E flat major)

30대의 Pyotr I. Tchaikovsky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 갑작스런 이별의 아픔이 차이코프스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내적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마음이 거친 음악으로 나올 법도 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린 속살의 진주 조개가 영롱한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작곡가는 고통의 마음으로 완벽한 화음과 애타는 선율의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던 감정을 음악으로 들을 때 듣는 이는 막힌 가슴이 뚫리는 위로를 얻게 된다. 감정이 말하도록 하는 특별한 능력이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있다. ‘명상’, ‘스케르초’, ‘멜로디’의 3악장으로 구성된 ‘소중한 장소의 추억’은 그 좋은 예다.

이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첫 악장은 협주곡의 느린 악장을 염두에 두고 썼다가 앞, 뒤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락됐던 곡이다. 협주곡의 2악장은 ‘칸초네타’로 교체됐는데 둘 다 “노래한다”(칸타빌레와 칸초네타)는 분위기로는 마찬가지다. 따로 쓴 ‘스케르초’와 ‘멜로디’를 ‘명상’과 묶어 ‘소중한 장소의 추억’이 만들어졌다. ‘소중한 장소’는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였던 나데츠다 폰 메크 부인의 영지인 브라일로프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곡가가 이곳을 방문한 기록이 없으니 곡은 온전히 본인의 상상과 상념에 바탕을 둔 결과물이다. 작곡 배경과 표제의 취지는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바이올린 음악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부인은 음악과 표제 모두에 아주 흡족해 했다고 한다.

Nadezhda von Meck

작곡가 자신은 첫 악장을 제일 마음에 들어했는데 동시에 가장 어렵게 만든 곡이라고 회고했다. 매우 빠른 ‘스케르초’에 이어 나오는 ‘멜로디’에 대해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이 곡을 쓰려고 할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라일락이 아직 활짝 피어있고 온갖 풀이 높이 자라던 때였다. 내 우울증은 장미가 막 피기 시작하는 걸 볼 때까지 계속되었다.”

애초에 ‘무언가 Chant sans paroles’란 제목이 붙었던 ‘멜로디’는 푸른 풀과 붉은 장미의 생명력 덕분에 우울함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작곡가의 기쁨이 녹아있는 곡이라 하겠다. 글라주노프가 오케스트레이션한 관현악 버전도 유명하지만 추억의 노래를 듣는 맛으로 치자면 두 연주자가 나누는 대화가 더 감칠 맛 난다.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발라드"

Eugène-Auguste Ysaÿe(1858-1931):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Ballade“ Op. 27-3 (7 mins. / 1923 / dedicated to George Enescu)

60년대의 위르겐 이자이 Eugene Ysaye in his 60s

1923년에 작곡된 단악장의 이 소나타는 작품번호 27의 여섯 개 소나타 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작곡가가 이 곡에 대해 남긴 말이 있다. “제 상상력이 맘껏 날아다니게 했습니다. 제오르제 에네스쿠에 대한 우정과 존경, 그리고 카르멘 실비아 왕비의 궁정에서 그와 함께 한 즐거운 연주를 떠올리면서 말이죠.” (카르멘 실비아는 독일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나 루마니아 왕과 결혼했고 재위 시절에 루마니아 금십자(적십자와 같은 기능)를 설립해 전쟁 부상자를 도왔다. 여성 교육에 앞장섰으며 그 외 많은 자선 단체를 설립했다. 음악, 미술, 문학의 여러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많은 창작시를 남겼고 루마니아 농민 사이에 전승되던 노랫말을 채집해 시로 정리하기도 했다.)

'발라드'를 헌정받은 제오르제 에네스쿠 George Enesco

이 소나타는 2부로 구성되었다. 렌토 몰토 소스테누토 (최대한 억제하는 느낌으로 느리게)라 표시된 도입부로서의 1부는 오페라로 친다면 서창과도 같이 곧 주제가 나올 것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온음만 사용하는 음악이 급격한 도약과 추락의 선율로, 많은 불협화음과 반음계의 사용으로 진행하며 변화무쌍한 표정을 드러낸다. 1부는 알레그로 인 템포 지우스토 에 콘 브라부라(정확한 알레그로의 빠르기로 대담하게)라 표시된 이 곡의 2부로 바로 넘어간다. 3/8박자로 동요하는 듯한 부점, 더블 스톱과 트리플 스톱이 난무하는 음악이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빠른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원활하게 이어 연주하기) 셋잇단음표의 마디를 통과한 후에는 다시 부점 리듬의 주제로 되돌아간다. 32분 음표가 다닥다닥 붙어 극도로 빠르고 찬란한 느낌을 주는 코다로 끝이 난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에게 200개 넘는 곡이 헌정되었다. 드뷔시, 생상스, 쇼송, 프랑크와 같은 작곡가들도 이자이를 위한 작품을 썼다. 헌정은 헌정을 낳아 작곡가로서의 이자이는 이 소나타가 포함된 독주 바이올린 소나타집의 모든 곡을 같은 시대를 살던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헌정했다. 이 곡을 받은 루마니아 출신의 제오르제 에네스쿠는 이자이처럼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후에 예후디 메누힌을 가르친다.

한여름의 전야 - 에드워드 로버트 휴Midsummer Eve by Edward Robert Hughes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Johannes Brahms(1833-1897):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Op. 108 (22 mins. / 1886-88 / dedicated to Hans von Bülow)

I. Allegro
II. Adagio
III. Un poco presto e con sentiment
IV. Presto agitato

1889년의 요하네스 브람스

거대한 산과도 같은 베토벤 9번 교향곡 때문에 브람스가 D단조를 회피했다는 의혹이 있다. 하지만 이는 호사가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대규모 기악 작품은 아니라 해도 이 소나타 3번에서처럼 신중하고도 단호한 필치로 D단조 활용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 근거가 희박하다. ‘합창’ 교향곡의 긴장감과 극적 전개가 이 조성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같은 조의 이 곡에서도 긴박하며 힘찬 에너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위대한 교향곡과 협주곡들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작곡가의 고고한 지성과 빼어난 장인 정신이 아름답게 결합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은 첫 네 마디에 악장 전체가 응축되어 있다. 상승하는 네 번째 음, 하강하는 여덟 번째 음, 빠른 음표 뒤에 이어지는 긴 음,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피아노의 불안정한 반주선이 그것이다. 신비롭게 등장하는 이 동기가 옥타브를 오르내리고, 갑작스런 포르테로 영웅적 표정을 짓는데 듣는 이의 감정도 함께 울컥한다. D장조로 마감되며 2악장으로 이어진다. 피아노가 반주 역할에 집중하는 동안 바이올린이 부드럽고 서정적인 노래를 한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낭만적 선율은 3/8박자 느린 왈츠 리듬으로 바뀌어 이어지고 더블 스톱을 사용해 상승하는 클라이막스에 이르렀다 다시 악장 초입의 소박한 정서로 돌아와 조용하게 끝난다.

Hans von Buelow

응축된 감정의 이 악장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전 악장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종의 스케르초인 3악장은 서정적인 2악장과 폭발적인 4악장 사이에 위치한다. 앞선 두 개의 소나타가 전형적인 3악장 구조인데 3번 소나타는 이 악장 덕분에 4악장 구조가 되었다. 어찌 보면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고, 다른 면에서는 사람들이 간과하던 곳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다. 변칙적인 리듬과 선율 때문에 일종의 스케르초라는 평을 듣는데 전혀 요란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평론가 한슬릭은 이 3악장을 가장 독창적인 브람스 작품이라 평하기도 했다. 1악장의 열정은 4악장에서 다시 나타난다. 피아노는 집약된 힘으로 음을 쏟아낸다. 두 악기는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맞붙는다. 극적 고조에 올랐다가 비극적인 분위기로 하강하는 코다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이 소나타는 고전에서 낭만으로의 전이 과정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겸비한 소나타로 추앙받고 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로 유명했던 한스 폰 뷜로에게 헌정됐다. 뷜로는 바그너의 제자이자 추종자였는데 부인이었던 코지마가 이혼 후 바그너에게 가버리자 바그너와 대척점에 있던 브람스와 친분을 쌓으며 음악적으로 지지하기에 이른다. 정통 독일 음악의 계보를 3B(바흐, 베토벤, 브람스)라 처음 일컬었던 이도 뷜로였다.

written by Pete Song

(주)피트뮤직 petemusi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