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gram Introduction

점과 선 시즌 2-3: 사랑의 열정

3막 1장 보틈과 티타니아 Midsummer night_s dream by Marc Chagall 1939
“제 귀는 당신 노래에 반했고 제 눈은 당신 모습에 홀렸어요” (3막 1장 – 티타니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Violin Sonata No. 9 in A major, Op. 47 „Kreutzer“ (43 mins. / 1802-1804 / dedicated to Rodolphe Kreutzer)

I. Adagio sostenuto (A major) – Presto (A minor)
II. Andante con varizaioni (F major)
III. Finale. Presto (A major)

고난도의 기교로 풍부한 감정선을 그리며 40분 넘게 연주해야 하는 크로이처 소나타는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거대한 산과 같은 작품이다. 애초에는 조지 브리지타워에게, 나중에는 당대를 주름잡던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로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됐으나 정작 크로이처는 이 작품을 싫어해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브리지타워는 베토벤과 함께 이 곡을 초연했던 인물이다. 연주회가 끝나고 술자리를 갖던 중 베토벤이 흠모하던 여성에게 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하는 바람에 둘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엔 헌정 대상이 바뀌었다.

아다지오 1악장은 솔로 바이올린의 느린 도입부로 시작해 피아노가 어두운 단조의 음을 들려주고 이 악장의 실질적인 메시지라 할 수 있는 분노에 찬 프레스토가 나온다. 템포와 조성은 두 악기의 치밀한 연결 속에 변화를 지속하고 다시 아다지오로 돌아와 고뇌에 찬 코다로 마무리된다.

2악장은 잔잔한 F장조의 멜로디와 다섯 개의 독특한 변주곡으로 이루어진다. 트릴로 장식한 생동감 넘치는 첫 변주,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연주하면서 활기찬 두 번째 변주, 어둡고 명상적인 F단조의 세 번째 변주, 가볍고 장식적이며 시원한 바람과도 같은 흐름 속에 첫 두 변주를 회상하는 네 번째 변주, 그리고 느리면서 극적인 느낌이 강조되는 다섯 번째 변주가 끝나면 다시 F장조의 편안함으로 되돌아와 악장이 끝난다. 고요하게 마무리된 2악장의 분위기는 피아노가 A장조의 큰 화음을 울리는 3악장의 시작으로 사라지고 6/8박자의 타란텔라 리듬으로 활기차게 전환된다. 대비되는 에피소드가 연속되고 주제로 돌아온 후 쇄도하는 A장조의 음으로 곡은 즐겁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1800년대 초의 베토벤

일생을 통해 베토벤과 크로이처는 단 한 번 스치듯 만났다고 한다. 둘 사이가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곡을 헌정받은 크로이처는 정작 이 곡을 “터무니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작품으로 여겼다. 한편 80여 년이 흐른 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곡에서 영감을 받아 <크로이처 소나타>란 소설을 출판했다. 여러 연극과 영화로 개작된 소설 덕분에 베토벤의 소나타 또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곡을 처음 헌정받았던 조지 브리지타워를 소재로 미국의 계관 시인인 리타 도브가 <소나타 물라티카(직역하자면, 혼혈 소나타)>란 시집을 펴낸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카리브 해의 흑인, 폴란드인과 독일인의 피를 이어받은 조지 브리지타워의 삶을 (소나타의 악장처럼) 주제별로 다섯 개의 장에 나누어 실었다. 소나타 물라티카란 제목은 베토벤이 처음 이 곡에 붙였던 이탈리아어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렇게 씌어있었다. “위대한 야생의 작곡가, 혼혈 남성 브리쉬다우어(브리지워터)를 위해 쓴 소나타 물라티카” 정치적 올바름이 시대의 규범인 오늘날, 이와 같은 제목을 달았다면 아마도 철퇴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곡이 전하는 분위기나 표제가 바뀐 정황을 참고할 때, 이 곡은 크로이처 소나타보다 소나타 물라티카가 더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3막 1장 보틈과 티타니아 Bottom and Titania by William John Montaigne c1846

R.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

Richard Strauss(1864-1949): Violin Sonata in E-flat major, Op. 18 (30 mins. / 1887-1888)

I. Allegro, ma non troppo
II. Improvisation: Andante cantabile
III. Finale: Andante – Allegro

슈트라우스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관현악곡, 오페라, 가곡으로 유명하다. 당대에는 가장 뛰어난 지휘자로도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작곡가 자신은 빼어난 피아니스트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다. 그 증거가 불과 23살 나이에 작곡한 기교 넘치는 이 소나타에 담겨 있다.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미 두 개의 교향곡, 두 개의 협주곡, 두 개의 피아노 트리오, 피아노 사중주, 현악 사중주, 첼로 소나타와 다수의 가곡을 발표한 뒤에 나온 작품이니까.

바이올린 소나타는 작곡가가 교향시 – 돈 후안, 죽음과 변용, 맥베스 – 에 착수하기 바로 전에 완성됐다. 교향시 작품들의 조밀한 질감과 탁월한 기악적 효과는 지금도 탄성을 자아내는데 이는 이전의 기악 작품들에서 이미 드러났던 것이다. 일찌기 소나타 형식을 시대에 뒤떨어진, 껍데기만 남은 것으로 여겼던 슈트라우스지만 실내악 작품은 대개 이 형식으로 썼다. 대신 형식에 봉사하는 방식이 아닌 풍부한 주제를 정교하게 직조해내는 데 초점을 뒀다.

1악장은 피아노 솔로의 간결한 주제로 시작한다. 이어서 바이올린 서정적인 선율을 들려주면서 주제가 제시된다. 안단테 칸타빌레의 2악장은 특이하게도 ‘즉흥연주’란 표제가 붙었는데 고요하게 읊조리는 바이올린이 즉흥적인 노래를 닮은 것에 연유한다. 그 노래는 악장 내내 이어지고 명상적인 분위기에서 끝난다. 3악장은 느리고 정석적인 움직임의 피아노로 시작해 활기찬 알레그로로 이어진다. 화려한 기교로 두 연주자가 쏟아내는 음이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폭발과도 같은 정점을 지나며 끝난다. 1악장과 3악장의 알레그로는 고결하며 당당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베토벤의 ‘에로이카’ 교향곡, 슈트라우스가 나중에 쓴 교향시 ‘영웅의 생애’와 같은 E 플랫 장조로 쓰여졌다.

슈트라우스가 이 곡을 썼을 때는 나중에 부인이 된 소프라노 파울리네 드 아나를 처음 만났을 때이다. 풍성한 서정에 휩싸인 곡에서 낭만적 열정의 암시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황홀하고도 긴 호흡의 가운데 악장 안단테 칸타빌레가 특히 그러하다. 이 악장은 후에 독립적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높은 인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작곡가가 이를 허락했던 점에 비춰보면 슈트라우스 자신도 이 악장이 연인을 향한 사랑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written by Pete Song

(주)피트뮤직 petemusic.org

Program Introduction

점과 선 시즌 2-3: 사랑에 미치다

3막 1장 보틈과 티타니아 Midsummer night_s dream by Marc Chagall 1939
“제 귀는 당신 노래에 반했고 제 눈은 당신 모습에 홀렸어요” (3막 1장 – 티타니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Violin Sonata No. 9 in A major, Op. 47 „Kreutzer“ (43 mins. / 1802-1804 / dedicated to Rodolphe Kreutzer)

I. Adagio sostenuto (A major) – Presto (A minor)
II. Andante con varizaioni (F major)
III. Finale. Presto (A major)

크로이처 소나타를 처음 헌정받았던 조지 브리지타워 George Bridgetower

고난도의 기교로 풍부한 감정선을 그리며 40분 넘게 연주해야 하는 크로이처 소나타는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거대한 산과 같은 작품이다. 애초에는 조지 브리지타워에게, 나중에는 당대를 주름잡던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로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됐으나 정작 크로이처는 이 작품을 싫어해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브리지타워는 베토벤과 함께 이 곡을 초연했던 인물이다. 연주회가 끝나고 술자리를 갖던 중 베토벤이 흠모하던 여성에게 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하는 바람에 둘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엔 헌정 대상이 바뀌었다.

RODOLPHE KREUTZER French violinist and composer Date: 1766 - 1831

아다지오 1악장은 솔로 바이올린의 느린 도입부로 시작해 피아노가 어두운 단조의 음을 들려주고 이 악장의 실질적인 메시지라 할 수 있는 분노에 찬 프레스토가 나온다. 템포와 조성은 두 악기의 치밀한 연결 속에 변화를 지속하고 다시 아다지오로 돌아와 고뇌에 찬 코다로 마무리된다. 2악장은 잔잔한 F장조의 멜로디와 다섯 개의 독특한 변주곡으로 이루어진다. 트릴로 장식한 생동감 넘치는 첫 변주,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연주하면서 활기찬 두 번째 변주, 어둡고 명상적인 F단조의 세 번째 변주, 가볍고 장식적이며 시원한 바람과도 같은 흐름 속에 첫 두 변주를 회상하는 네 번째 변주, 그리고 느리면서 극적인 느낌이 강조되는 다섯 번째 변주가 끝나면 다시 F장조의 편안함으로 되돌아와 악장이 끝난다. 고요하게 마무리된 2악장의 분위기는 피아노가 A장조의 큰 화음을 울리는 3악장의 시작으로 사라지고 6/8박자의 타란텔라 리듬으로 활기차게 전환된다. 대비되는 에피소드가 연속되고 주제로 돌아온 후 쇄도하는 A장조의 음으로 곡은 즐겁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일생을 통해 베토벤과 크로이처는 단 한 번 스치듯 만났다고 한다. 둘 사이가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곡을 헌정받은 크로이처는 정작 이 곡을 “터무니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작품으로 여겼다. 한편 80여 년이 흐른 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곡에서 영감을 받아 <크로이처 소나타>란 소설을 출판했다. 여러 연극과 영화로 개작된 소설 덕분에 베토벤의 소나타 또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곡을 처음 헌정받았던 조지 브리지타워를 소재로 미국의 계관 시인인 리타 도브가 <소나타 물라티카(직역하자면, 혼혈 소나타)>란 시집을 펴낸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카리브 해의 흑인, 폴란드인과 독일인의 피를 이어받은 조지 브리지타워의 삶을 (소나타의 악장처럼) 주제별로 다섯 개의 장에 나누어 실었다. 소나타 물라티카란 제목은 베토벤이 처음 이 곡에 붙였던 이탈리아어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렇게 씌어있었다. “위대한 야생의 작곡가, 혼혈 남성 브리쉬다우어(브리지워터)를 위해 쓴 소나타 물라티카” 정치적 올바름이 시대의 규범인 오늘날, 이와 같은 제목을 달았다면 아마도 철퇴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곡이 전하는 분위기나 표제가 바뀐 정황을 참고할 때, 이 곡은 크로이처 소나타보다 소나타 물라티카가 더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R.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

Richard Strauss(1864-1949): Violin Sonata in E-flat major, Op. 18 (30 mins. / 1887-1888)

I. Allegro, ma non troppo
II. Improvisation: Andante cantabile
III. Finale: Andante – Allegro

22세 때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관현악곡, 오페라, 가곡으로 유명하다. 당대에는 가장 뛰어난 지휘자로도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작곡가 자신은 빼어난 피아니스트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다. 그 증거가 불과 23살 나이에 작곡한 기교 넘치는 이 소나타에 담겨 있다.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미 두 개의 교향곡, 두 개의 협주곡, 두 개의 피아노 트리오, 피아노 사중주, 현악 사중주, 첼로 소나타와 다수의 가곡을 발표한 뒤에 나온 작품이니까.

바이올린 소나타는 작곡가가 교향시 – 돈 후안, 죽음과 변용, 맥베스 – 에 착수하기 바로 전에 완성됐다. 교향시 작품들의 조밀한 질감과 탁월한 기악적 효과는 지금도 탄성을 자아내는데 이는 이전의 기악 작품들에서 이미 드러났던 것이다. 일찌기 소나타 형식을 시대에 뒤떨어진, 껍데기만 남은 것으로 여겼던 슈트라우스지만 실내악 작품은 대개 이 형식으로 썼다. 대신 형식에 봉사하는 방식이 아닌 풍부한 주제를 정교하게 직조해내는 데 초점을 뒀다.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의 뮤즈였던 파울리네 드 아나 Pauline de Ahna

1악장은 피아노 솔로의 간결한 주제로 시작한다. 이어서 바이올린 서정적인 선율을 들려주면서 주제가 제시된다. 안단테 칸타빌레의 2악장은 특이하게도 ‘즉흥연주’란 표제가 붙었는데 고요하게 읊조리는 바이올린이 즉흥적인 노래를 닮은 것에 연유한다. 그 노래는 악장 내내 이어지고 명상적인 분위기에서 끝난다. 3악장은 느리고 정석적인 움직임의 피아노로 시작해 활기찬 알레그로로 이어진다. 화려한 기교로 두 연주자가 쏟아내는 음이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폭발과도 같은 정점을 지나며 끝난다. 1악장과 3악장의 알레그로는 고결하며 당당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베토벤의 ‘에로이카’ 교향곡, 슈트라우스가 나중에 쓴 교향시 ‘영웅의 생애’와 같은 E 플랫 장조로 쓰여졌다.

슈트라우스가 이 곡을 썼을 때는 나중에 부인이 된 소프라노 파울리네 드 아나를 처음 만났을 때이다. 풍성한 서정에 휩싸인 곡에서 낭만적 열정의 암시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황홀하고도 긴 호흡의 가운데 악장 안단테 칸타빌레가 특히 그러하다. 이 악장은 후에 독립적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높은 인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작곡가가 이를 허락했던 점에 비춰보면 슈트라우스 자신도 이 악장이 연인을 향한 사랑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written by Pete Song

(주)피트뮤직 petemusic.org